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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e Jagd

중국신화 주저리

2025. 5. 16. comment

신화는 당시 역사의 상황과 사상을 많이 반영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도시국가들의 지위에 따라 국가의 수호신의 지위가 바뀌는 것처럼 유일신이 존재하지 않던 고대의 도시국가들은 신화를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예를 들자면 상족이 왕조를 세우자 상족의 수호신이던 제씨는 최고신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고대 중국 문명 역시 다신교의 형태로 신화를 형성했으나 일괄적으로 신화를 집필하지 않았기에 중국 신화는 역사와 혼동되거나 원형을 잃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왜 신화를 모아서 집필하지 못하였는가? 첫째, 척박한 환경에서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신화를 모아 집필할 여유가 없었다. 둘째, 당시 중국에는 신화적인 이야기를 멀리하던 유가 사상이 주를 이루었다. 셋째, 중국에는 너무나도 많은 민족이 존재했으며 그만큼 신화와 신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후기 위진남북조 시대에서는 도교가 발달하며 이러한 신화적인 사상과 신선사상이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부 신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묘사와 특성이 달라지며 역사에 따라 변형되기 마련이었다. 또한 일부 신화는 역사와 섞이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자면 하나라의 왕인 우왕은 신이었던 전욱의 손자였으며 중국의 고사에 자주 언급되는 순임금은 눈동자가 두 개인 신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도교는 토착신앙에서부터 시작된 사상이다. 하지만 중국의 토착신앙은 여러 요인에 의해 혼용되고 일관성이 없었다. 이러한 토착신앙인 신화를 도교에서는 어찌 취급했으며, 어떠한 변형을 거쳐 신화를 집필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관련논문ㅊㅊ받습니다. 중국신화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가 초딩이라 좀 가물가물하네여. 틀렸을수도 있음 ㅈㅅ 틀린거 있음 방명록 남겨주세요.

이건 제강인데 그냥 귀여워서


참고 문헌: 이재광. (2000). 중국의 신화와 역사.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23(1), 5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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